베트남 여행 후기 - 여성 인권과 관련한 탐방/조사/경험



: (1) 베트남 여성 박물관, (2) Women in Vietnam 위키피디아, (3) 일주일간 보고 겪고 느낀 것

베트남 여성 박물관은 하노이에 오자마자 첫 여정으로 선택한 곳이다. 베트남 여성 박물관이라,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을지 정말 궁금했다. 특히나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나라여서 더더욱. 예전에 베를린에서 동독 박물관에 갔을 때, 공산주의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이념이기 때문에 여성도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이 퍼져서 여성의 취업률이 서독보다 동독에서 더 높았고, 그렇지만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몫이어서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나머지 손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슈퍼우먼의 이미지가 동독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등 여권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기에. 그래서 과연 베트남에서도 비슷할지 궁금했고 꼭 와보고 싶었다.

베트남 여성 박물관은 1결혼과 가족, 2 역사, 3 패션 세 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 전시관은 비엣족과 다른 소수 민족들의 결혼 문화를 다루고 있었다. 결혼식을 할 때 신부가 가장 예쁘기 때문에 햇빛이 질투해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신부의 얼굴을 빨간 천으로 가리고 식을 진행하는 부족, 어릴 때부터 길게 기른 머리를 결혼하면서 기혼자임을 드러내기 위해 쪽져 올리는 부족 등등 다양한, 그렇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풍습들이 있었다. 그 중 일부는 모계사회였다고 하는데 그런 부족에서는 사위가 신부의 집으로 이사간다고 했다. 그 중 한 부족에서는 열네살 열다섯살 정도가 되면 결혼을 해서 신랑 집에서 보름을 지내고 부부가 친정집으로 이주해서 산다고 했다. 남자들은 몇 살쯤 결혼하는지 그 글에 써있지 않아서 조금 갸우뚱 했다. 조혼은 가부장제 부계사회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모계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건가? 예전에 <젠더와 사회>를 읽을 때 역사적으로 가모장제는 나타난 적이 없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여전히 가부장제이면서 모계사회인 곳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예전에 태국 다녀와서 성매매 관련 논문 읽어볼 때, 모계사회여서 가족 부양의 의무는 딸들에게 있어 가난한 시골에서 돈 벌기 위해 도시로 성매매하러 가는 여성들이 많은데, 그 와중에도 주요 공직자리는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모계사회라는 것이 여성에게 의무만 이중으로 지워진 것인가? 가부장제이면서 모계사회인 문화에 대해서는 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 뒤로 가족을 다루는 전시관에 농업에 대한 전시도 간단하게 있었다. 경작(planting and harvesting)은 여자의 몫이고 남자는 땅을 갈고 기구를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clear the land, make the tools required). 여성이 하는 일은 일년 내내 지속되는 일인 반면 남성이 하는 일은 단발적인 일인 것 같아서 ‘공평한 분업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어지는 전시에 적힌 설명을 보니 살림도 엄마의 몫이었고 아이 교육도 엄마의 몫이고 “남자는 경제를 책임졌다"고 하던데 농업이 주인 사회에서 경작도 여자가 하는데 무얼 하는 것이 가정 경제을 책임지는 부분인지? 역시 궁금했고.. 영어로 된 설명에서 놓친 것들이 있어서 궁금증이 해결 안 된 것일 수도 있다.



그 뒤로 베트남 역사 속에서의 여성, 특히 프랑스에 대한 독립운동과 미국전쟁(이 박물관에서는 베트남전쟁을 미국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에서 여성들이 한 역할을 말하고 있었다. 모든 설명을 다 읽진 못했지만 프랑스에 대항한 독립운동을 할 때도, 베트남 전쟁에서도 여성들이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보였다. Vietnamese Women’s Union을 비롯해 여러 개의 여성 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기억나는 것만 적어보자면 남베트남에서는 게릴라군의 40퍼센트가 여성이었고 많은 여성들이 반미운동을 했다고 한다. 북베트남에서는 VWU가 여성의 세 가지 책임을 선전했는데 그것은 “생산, 전투, 가족"이었다. 전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돌보는 일을 여성의 책임으로 말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에 3만 명의 베트남 여성 영웅을 기리는 공간이 있었고 복면을 쓰고 훈련하는 사진, 길다란 총을 메고 방어 태세를 갖춘 사진 등등이 있었다.




미국전쟁(베트남전쟁)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베트남 오는 비행기에서 본 “Last Days in Vietnam"이라는 미국 다큐멘터리와 완전히 달랐던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 다큐에서는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에서 저지른 잔인한 일을 언급했고(그러는 미국은 잔인한 일을 하지 않았는지), 미국 의회가 더 많은 예산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리고 주베트남 미국 대사가 우유부단한 결정을 해서, 충분히 많은 남베트남 사람들을 구출해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북베트남 사람들이 쳐들어오는데 미국을 도와준 남베트남인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쳐 나온 전쟁 마지막 며칠간을 가슴아픈 일을 회상하듯 그려냈다. 그 안에서 북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는 나쁜 이들이었고 남베트남은 미국이 구조해줬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추가로, 그 전쟁은 애초에 누구 때문에 시작된 것인지..? 구출 어쩌구를 이야기하기엔 근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보기 불편했던 다큐)

하지만 여기 여성박물관에서는 남베트남에서 미군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위해 싸운 이들을 영웅으로 추대하고 있었다. 미군이 자본주의의 이념을 지켜내지 못한 “패전"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이곳에서는 외세의 침략을 무찌르고 맞이한 “해방(liberation)"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하지만 막상 상반된 입장의 이야기를 직접 접하니 흥미로웠다. 이 박물관에서는 미국을 무찌른 북베트남(과 현재의 베트남)이 용맹한 이미지로 그려졌는데, 나중에 베트남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하다보니 노동운동가들이 부당한 처벌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다는 인권단체의 기사를 보았다. 역시 이 세상에는 여러가지 관점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역시 세상에는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뭐 이런 생각도.

세 번째 관은 베트남 여성의 패션이었는데 여기는 베트남의 전통의상, 특히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의상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것은 소수민족 여성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대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이 곳은 그냥 슬쩍 보고 나왔다.

결혼으로 시작해 패션으로 끝나는 여성 박물관이라.. 내가 만약 한국 여성 박물관을 만드는데 전시관을 세 개로 나누어 구성한다면 어떻게 만들고 싶을까 생각해봤다. 결혼 풍습과 패션을 독립된 관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여성 박물관은 어떤 여성상을 그리고 싶었을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 두 번째 전시관에서 베트남 여성들은 총을 들고 싸우거나 복면을 쓰고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세 번째 전시관에서 베트남 여성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쪼그리고 앉아 밥을 짓고 있었다. 두 가지 완전히 상반된 모습 모두 베트남 여성의 역사이자 일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에 커다란 공을 세웠으면서도 여전히 결혼/가족/가부장제에 크나큰 영향을 받고 가사노동의 굴레에 묶여있는 일상...

베트남의 여성 인권에 대해서 계속 궁금증이 남아서 “Women in Vietnam"이라는 위키피디아 문서를 찾아서 읽었는데 정말 그러했다. 이 문서에서는 베트남이 공산주의 이념으로 만인평등/여남평등을 주창했지만 가부장적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여성이 여러가지 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우선적으로 여아 낙태가 만연하다고 한다. 베트남은 두 자녀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대를 이을 아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초음파 검사를 통해 성별을 감별하고 여아를 지우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또한, 가정 폭력에 고통받는 여성도 굉장히 많은데 그걸 신고하면 집안망신으로 생각하고, 신고 후에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여성에게 더 불리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신고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가사노동 또한 마찬가지로 여성의 책임이고 결혼 후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닌빈에서의 홈스테이를 통해서는 한 가정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요리는 아빠가 할 때도 있었지만 청소나 정원 가꾸기, 홈스테이 운영 전반은 엄마가 했다. 아들은 별 일 하는 것을 못봤는데 한 살 더 어린 딸은 청소를 하고 이런 저런 집안일을 도우고 있었다. 또한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홈스테이 주인은 홈스테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탐콕에서 뱃사공을 하고 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딸과 아들 모두를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정말 너무 익숙해서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니까 베트남에서는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것은 나의 막연한 이상화였을 뿐이었다. 유럽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좋아보이는 유럽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일을 겪어왔던 것처럼.. 여성 차별은 세상에 너무나 똑같은 모습으로 어디에나 존재한다.

위키피디아 뿐만 아니라 나의 경험으로도 베트남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느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길을 가다보면 남자들이 정말 노골적으로 쳐다본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위아래로 훑는다. ‘너 나 왜 쳐다보니?’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팍 쓰고 눈싸움을 해도 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베트남 남성들이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고 느껴졌다. 일주일동안 돌아다니면서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마주치는 남성들 중 굉장히 많은 이들이 비슷한 태도로 나를 쳐다봤기에 이렇게 글에 적는다. 또한, 길을 가다가 마주칠 때 절대 몸을 비켜주지 않는다. 거의 부딪힐 뻔 하더라도 내가 어깨를 웅크리고 몸을 돌려서 피해야 하고 남자들은 자기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런 바디랭귀지들이 몸에 배어 있는 문화를 보여준다고 느꼈다. 길에서의 성희롱과 캣콜링도 굉장히 많이 겪었다. 지나가는 나를 보면서 갑자기 윗도리를 가슴팍까지 들어올리더니 뭐라뭐라 말하면서 동그랗게 툭 튀어나온 자기 배를 통통 두드렸던 일이 있었다. 너무 불쾌한 성희롱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념품 샵에서 베트남 여성들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성애화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오자이를 입고 세모난 베트남 모자를 쓰고 있는 뒷모습. 어느 기념품 샵을 가나 그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이 그려진 엽서와 사진이 가득했다. 실제로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을 본 것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 딱 두 명이었고 현지인 중에 아오자이를 입은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남성을 비슷한 방식으로 전통의상을 입혀놓은 엽서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베트남에 놀러온 관광객들과 관광 상품을 만들어내는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 여성을 이런 이미지로 만들어내고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구글창에 “베트남"을 치면 맨 위에 “베트남 여성"이 자동완성 되고 그 검색어를 눌렀을 때 어떤 내용들이 나오는지들 다들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로 검색했을 때도 검색어 자동완성만 되지 않을 뿐 아오자이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하고 다소곳이 서 있는 사진들이 주르륵 나온다. 이 부분은 국제 결혼/성매매와 동떨어져 있지 않을 것 같다.



혁명과 구국의 영웅, 아들을 낳으려 딸을 낙태하고 집안일에 시달리는 엄마, 궂은 일을 맡아 해내지만 저임금 직종에 몰려있는 인력, 아오자이를 입고 다소곳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성적 대상... 일주일동안 내가 보고 읽고 느낀, 겹겹이 쌓여있는 베트남 여성이 지나 온 자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