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 몸에 대한 숭배, 그 잔인한 폭력

2016년 학교 글쓰기 수업 과제로 제출했던 글입니다. <여성에게 다이어트가 왜 사회적 의미의 폭력인지>를 주제로 쓴 글입니다.




“여자는 평생 다이어트를 하니까 뭐든지 마음껏 먹을 수가 없겠죠." 2012년 방송되었다가 규제를 받은 한 식품광고에 나오는 표현이다.11 결국 제재를 받긴 했지만, 이 말은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인식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일생에 거쳐 다이어트를 하고, 몸매 관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성은 날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씬함으로써 아름다워질 수 있고 아름다움으로써 진정한 여성이 된다. 달리 말하면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어야만 여자이고, 뚱뚱한 여성은 여자 취급도 받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여자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노는 바비 인형은 모든 상품이 획일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잘록한 허리와 늘씬한 팔다리. 마치 그러한 모습이 당연한 것이며 ‘너도 자라면 이런 모습을 하게 될 거야(그래야만 할 거야)’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날씬함에 대한 숭배, 뚱뚱함에 대한 혐오

이렇게 예쁘고 날씬할 것을 강요받은 여성의 몸은 남성의 시각에 의해 상품으로 전락하여 소비된다. 한 통신회사는 지난해(2015년) 몸매 좋은 여성 연예인이 뒤돌아보고 있는 사진을 실제 크기와 비슷하게 제작해 걸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를 낳으며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그 광고에는 아름다운 설현의 몸 외에는 아무 내용도 담고 있지 않았으며, 이 광고를 내건 SK 텔레콤의 사업 내용에 대해서도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티브이를 틀면 날씬한 몸을 가진 여성들이 가득하고 이들은 자신의 몸매를 더욱 부각하는 딱 달라붙는 상의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할리우드 영화 속 포스터를 보면, 남성 주인공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 얼굴과 전체 모습이 다 드러나는 반면, 여성은 얼굴이 잘린 채 몸매만이 두드러져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예쁜 몸(물건)’으로 다뤄진다.

반면 뚱뚱한 몸을 가진 여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는 어마어마하다. 당장 인터넷 창을 켜서 검색창에 ‘뚱뚱한 여자’라고만 검색해 봐도 ‘세상에서 제일 매력 없는 건 뚱뚱한 여자’라는 등 무시와 혐오를 잔뜩 담은 언어로 게시된 글을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일정 기간 합숙을 하면서 성공적으로 다이어트하는 과정을 극적이게 보여줬던 케이블 프로그램 <다이어트 워>와 성형으로 인생역전드라마를 보여주는 <렛미인> 등 티브이 프로그램에서도 뚱뚱한 몸을 가진 여성들이 겪은 서러움과 차별은 쉽게 접할 수 있다. 뚱뚱한 여성은 자기관리에 실패한 비정상적 인간으로 치부하고, 날씬한 몸을 가진 여성만 사람으로서 대접하는 것이다. 수많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55사이즈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free’ 사이즈 하나만을 판매한다. 상품 상세 설명은 큰 사이즈 여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44, 55사이즈 언니들은 넉넉하게 맞으실 거고요, 66사이즈 언니들은 딱 맞을 수 있으니 상세 사이즈 확인 부탁드려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66사이즈 여성에게도 잘 맞지 않을 수 있으며, 77 이상은 언급도 없으니, 이 옷을 살 생각도 말라는 것인가? 이것은 이러한 인터넷 쇼핑몰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큰’ 몸을 가진 여성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실히 반영된 것이다.

이렇게 여성의 몸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대로 그 자체로 소비재가 되어 소비되고, 아름답지 않으면 웃음거리로 승화시키지 않는 이상 혐오와 무시의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일생을 거쳐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싸운다. 그러다가 섭식장애를 앓기도 한다. 201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9세 한국 여성 중 무려 26.9%가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2 2014년의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에서는 중고생 여학생 중 45.1%가 최근 30일간 체중감소 시도를 해봤다고 했고, 그 중 살 빼는 약 복용 등의 부적절한 방법을 시도한 이들은 18.8%였다.3 이처럼 과도하게 날씬한 몸을 숭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들을 무리한 다이어트로 몰아넣었고, 건강까지도 해치게 만들었다.

살을 빼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갱생’ 스토리 또한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살을 빼니까 너무 좋아요! 자신감도 높아지고 사람들이 대하는 것도 달라져요!’라고 말하며 그 글을 읽는 당신들도 좀 더 굶고 좀 더 운동해서 자기처럼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이어트 성공담은 한 개인이 이 사회의 몸매에의 억압에 얼마나 잘 순응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순응한 결과 인생이 얼마나 편해졌는지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여성들은 다른 여성의 이런 경험담을 듣고 자신도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거나 ‘이 사람은 하는데 왜 나는 못하지.’ 등 자책을 느끼는 것 외에 다른 건설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4

날씬해지라는 명령, 다차원의 폭력

이렇게 여성들은 날씬하여 아름다워져야 하고 날씬하지 않으면 여자도 아니라는 편견과 억압 속에 살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폭력’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수단이나 힘’이다. 여성에게 지워지는 이러한 몸에 대한 억압은, 전쟁의 폭력 또는 각 사건으로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공권력의 폭력과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사고하고 재생산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의식하지 못한 채 가하는 폭력은, 그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속이거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쉽게 잊힐 수 있으므로 더욱 위험하다.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폭력을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그리고 문화적 폭력으로 나누었다. 직접적 폭력은 특정 가해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가해진 위해이다. 구조적 폭력은 사회적인 제도나 관습, 경제, 정치, 법 등 사회와 세계의 구조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이다. 문화적 폭력은 종교, 교육, 예술 등에 내재하여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5 여성의 아름다운 몸에 대한 엄격한 잣대는 이 세 가지 층위 모두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 직접적 폭력은 여성들이 일상생활을 하며 겪어야 하는 외모 평가 발언이 해당한다. 주변 남성으로부터 “살 좀만 빼면 훨씬 더 예쁠 텐데!"와 같은 오지랖 가득한 발언을 듣는다던가, 다른 여성에 대해 “돼지 주제에 저렇게 짧은 치마를 왜 입고 나왔대."하는 식으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다른 여성에 대한 폭언을 듣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임신한 후 살이 많이 쪄서 남편에게 구박받았다는 클리셰와 같이 흔한 이야기 또한 여성들이 몸매로 인해 맞닥뜨리는 직접적 폭력이다.

두 번째 구조적 폭력의 차원은 더 할 이야기가 많다. 여성에게 지워지는 ‘예쁜 몸’의 억압은 구조적 폭력의 성격을 많이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남성 중심적 사회이고, 남성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미의 기준이 훨씬 더 엄격하다. 남성의 외모는 다양한 모습이 받아들여지지만, 여성은 예쁘게 몸을 꾸며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렇게 가혹한 미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바로 남성의 기득권 강화의 수단이다. 오스트리아의 저널리스트 발트라우트 포슈는 그의 저서 『몸 숭배와 광기』(여성신문사, 2001)에서 여성에 대한 이상적 아름다움을 내세우는 것은 여권운동에 대한 보복조치6로서 발생했다고 말한다. 여성해방운동이 고조되었던 1920년대와 1960년대에 여성은 날씬해야 아름답다는 생각도 함께 두드러졌다고 한다. 이렇게 날씬하여 아름다워져야지만 여성답다, 즉 여성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은 곧 여성들의 삶과 생각을 제약하였고 남성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데에 가담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여성을 몸 안에 가두고 자기 몸을 검열하는 데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능동적 에너지를 제한하고 여권의 신장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몸을 통제함으로써 여성을 통제하는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구조적 폭력 차원에서의 또 다른 문제는 날씬한 몸의 획득과 유지가 바로 경제적 상황, 즉 계급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식을 먹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비용 지출이 필수적이다. 샐러드 등의 건강한 음식과 다이어트 보조제 등은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돈에 허덕이며 천원 이천 원도 아끼며 편의점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때워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를 사 먹으며 다이어트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곤두서는 근육 라인 없이 늘씬한 종아리 등의 각선미를 위한 각종 시술과 수술의 그 어마어마한 비용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운동으로 살을 빼려 한다고 해도 헬스장 회원이 되고 트레이너에게 코치를 받기 위해서 지출을 해야 한다. 살을 빼고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한 거의 모든 행위에 비용 지출이 수반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르바이트의 다음 월급날만을 기다리며 허덕이는 처지라면 날씬한 몸을 가지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사회는 몸 관리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또 그것이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며 여성들에게 날씬한 몸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물질적 여유가 있어야 날씬할 수 있다. 날씬한 몸에 대한 요구는 돈 있는 여성과 가난한 여성을 구분하게 만들어 여성을 분열시킨다. 여성의 분열은 곧 가부장제를 더욱 공고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셋째로, 날씬함이 곧 건강함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바로 문화적 층위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꼭 예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기 위해서 날씬함을 추구해야 한다며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정당화한다. 비만은 모든 성인병의 근원이라는 등 비만으로 인해 생기는 각종 부작용을 언급하며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그래서 ‘당연히’ 사람은 날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몸이 바로 ‘관리’가 가능한 공간으로 여겨진다는 것 또한 여성의 몸에 대한 문화적 폭력의 또 다른 모습이다. 몸매는 관리하면 되는 것이므로 뚱뚱한 여성은 ‘자기 관리도 할 줄 모르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되어 비난받는다. 이것이 얼굴에 대한 평가 등 다른 외모적 잣대와 날씬한 몸에 대한 요구가 다른 위치에 서게 되는 지점이다.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므로, 뚱뚱한 여성은 온전히 그 본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라 여기게 된다. 여기에는 몸은 노력을 통해 온전히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한 신체적 차이와 성장 환경으로 인한 몸 상태의 차이 등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간과한 생각이다. 게다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형의 모습은 일상 속 조금의 노력으로 가능한 건강관리의 수준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쉽게 이룰 수 없는 모습이다.

‘예쁜 게 좋은 건 사람 본능’이라고 하며 ‘날씬함=예쁨=좋음’의 등식을 내세우는 대중매체는 논리도 문화적 층위의 폭력이다. 대중매체는 몸매 좋고 여성을 숭배하고 소비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므로 괜찮다고 정당화한다. 또한, 마른 여성의 몸 외엔 별다른 내용도 없는 광고들이 수없이 많이 티브이 전파를 타고 방송된다. 액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그들의 능력이 중점적으로 주목받는데 반해 여자 주인공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카메라가 천천히 훑어내며 그 아름다운 몸매를 부각하는 쪽으로 다뤄진다. 이렇게 대중매체를 통해 ‘마른 것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여자가 좋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그리고 무의식중에 주입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생각을 받아들이게 된다.

억압받는 여성,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이에 대해 여성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체중에 대한 사회적 잣대를 마냥 모른 체하고 다이어트를 거부해야 할까? 아니면 최선을 다해 다이어트를 하여 그러한 잣대에 나를 맞추고 주변의 ‘고나리질’에서 해방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페미니즘 미학자 김주현은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 (책세상, 2009)에서 이런 외모적 잣대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외모 꾸미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와 외모를 꾸며 얻게 된 아름다움이 가진 권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고 설명한다. 전자의 대응전략은 “미적 욕망을 절제", 즉 여성 내부에 존재하는 날씬한 몸을 갖고자 하는 마음을 절제하여 다이어트를 아예 거부하는 것이다.7후자는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이 우월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받아들여 남녀의 위계적 관계를 뒤집고자 하는 전략이다.8 여성의 몸이 상품이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방법 모두,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외모적 잣대를 기본 전제로 깔아둔 채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미 깔린 전제를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인 후 전복할 것인가 하는 차원의 접근이지 그 전제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가부장제하의 이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이어트가 옳다, 옳지 않다고 논하는 것, 또는 ‘너는 네 몸을 사랑해야 해. 너는 너대로 예뻐.’ 라고 말해주는 것에 앞서, ‘네가 지금 고통 받는 건 사회적 차원의 압박 때문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뚱뚱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 다이어트 중에 음식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 날씬한 몸을 욕망하는 것 모두 어느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뚱뚱한 몸에 손가락질하고 다이어트를 요구하는 사회의 잘못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이미 매일의 일상에서 고통 받는 여성의 자책감은 덜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모든 고통을 완전히 해소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체중과 투쟁하는 여성은 하루 세 번 끼니를 먹을 때마다, 음식을 마주하는 매 순간마다 생명 유지로서 꼭 필요한 행위인 음식 섭취와 사회가 강요한 날씬한 몸매 유지 사이에서 갈등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런 투쟁은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폭력이기도 한 한편, 각 개인에게는 일상에 꼼꼼히 침투한 전쟁이므로 이에 대한 효과적 대응방안으로서의 정답은 쉽게 생각해내기 힘들다.

현재의 완전한 변화는 이끌어낼 수 없다 하더라도 체중 억압과 마른 몸 추구가 폭력이라는 것을 각 개인이 인식하고 그를 통해 사회적 차원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다 보면 조금씩 변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날씬한 몸에 대한 편견이 오롯이 담긴, 단백질 보충제 광고인 “Are you beach body ready?"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보면, 인식 변화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으며 변화를 이끌어 낼 동력이 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광고는 날씬한 모델의 몸을 크게 박아놓고 ‘해변에 적합한 몸매가 준비되었는지(Are you beach body ready?)’ 물어본다. 자기네 단백질 보충제를 먹고 다이어트를 해서 해변에 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항하여 네티즌들은 이 광고판 앞에서 비키니를 입은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해변에 적합한 몸을 갖는 법 : 해변에 간다."는 식으로 받아치며 반발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이렇게 개인적 차원에서의 반발이 있었던 것 뿐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이에 반대 뜻을 나타내는 광고를 게재했다는 것이다. “모든 몸매는 해변에 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하며 여러 회사이 이와 같은 차별적, 여성 억압적 광고 문구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9 이렇게 조금씩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나간다면 그 누구도 외모적 잣대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으로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주현,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 책세상, 2009
발트라우트 포슈, 『몸 숭배와 광기』, 조원규 옮김, 여성신문사, 2001
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책세상, 2000
김명희, 「종교·폭력·평화-요한 갈퉁의 평화이론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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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ports.kbs.co.kr/news/view.do?ncd=2424529, 2016.06.25
2 http://www.yonhapnews.co.kr/photos/1991000000.html?cid=GYH20130524000500044&from=search 2016.06.25
3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08/0200000000AKR20151108044651009.HTML?from=search 2016.06.25
4 사진 출처 : 다노Dano-다이어트 매거진 https://www.facebook.com/dietnote/photos/pcb.499608460242349/499608113575717/?type=3&theater 2016.06.26
5 김명희, 「종교·폭력·평화-요한 갈퉁의 평화이론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56, 2009.9, p.125-127
6 발트라우트 포슈, 『몸 숭배와 광기』, 조원규 옮김, 여성신문사, 2001, p.34
7 김주현,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 책세상, 2009, p.113-118
8 김주현,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 책세상, 2009, p.161-163
9 https://www.facebook.com/diversitykorea/posts/1025850430839941 201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