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을 "축제"로 기념한다는 것 - 월경페스티벌 후기

<월경을 "축제"로 기념한다는 것 - 월경페스티벌 후기>

어제,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 <월경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슬로건은 "어떤 피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 햇빛이 쨍하게 부서지는 날이었다. 오픈 시간 열두시에 맞춰 도착한 하자센터는 벌써부터 모든 준비를 끝나고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부스 사이사이에 걸어놓은 붉은 물감을 묻힌 속옷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12시라고 한 오픈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했기에 부스 준비가 덜 되어 있고 어수선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여자들이 일하는 곳에 지각이란 없었다! 대부분의 부스가 준비 완료 되어 있었고 스태프들은 들뜬 얼굴로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경에 대해서 생각나는 말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주세요."
첫 부스로 방문한 <찍는 페미>의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월경에 대해서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것"이라고 썼다. 가장 처음 생각난 말이다. 호르몬으로 인해서 여드름이 나고 식욕이 이상해지고, 몸 이곳 저곳이 닳는 듯 아프게 되는 월경. 거기다 꿉꿉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이 자궁 새끼는 왜 지 맘대로 배란하고 피 쏟고 난리부르스를 치냐. 생리를 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일"이라고 적었다.

중간쯤의 부스에서도 나에게 무언갈 적으라고 했다. <불꽃페미액션> 부스에서 준비한 월경 부적 만들기였다. 거기서 나는 노란 부적 종이에 빨간 물감으로 "월경통 썩 물러가랏!!" 정도의 말을 적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적어 놓고 간 비슷한 문구들("월경통 OUT" 등등)을 보면서 문득 '아니, 이게 이 페스티벌의 의미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의 나는 월경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했고, 이제는 월경통 보고 썩 꺼지라고 쓰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여기는 월경하는 것을 기리는 무려 <<월경 페스티벌>>인데??

우리가 만약 월경을 긍정하고 수용하는 사회였다면, 우리는 여전히 월경을 짜증나고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만약 월경으로 인해 한달에 한번 몸이 삭는 듯 아픈 고통을 드러낼 수 있었고, 그 고통으로 인한 휴식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더라면, 그래도 월경통을 저주했을까? 없는 일이 되기를 간전히 소망하기 보다, 그래서 없는 일처럼 생각하기 보다, 그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로 여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에서는, 남자가 월경을 하는 세상이었다면 그것은 자랑거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월경하는 날이라서 얼굴이 더 좋아보인다고 말할 테고, 국립월경불순 연구소가 있어서 과학자들이 심장마비보다 월경에 대해서 더 많이 연구할 것이라고 했다.(https://femiwiki.com/w/남자가_월경을_한다면) 정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잘못한 것은, 내 몸이 아니라, 내 자궁이 아니라, 엄연히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터부시하고 부정해 온 사회였다. 그러니 나의 몸을 비난하며 "월경통 좀 꺼져라!", "월경 좀 그만해라!" 할 것이 아니라, "세상아, 여기에 피 흘리는 여성이 있다! 우리는 매달 월경을 한다! 이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야!"라고 할 일이었다.

"당연한걸 당당하게". 올 7월 국내 출시 예정이라는 제니컵의 슬로건이다. 마지막쯤에 들렀던 제니컵 부스에서 이걸 보고, "아 그래, 이거다!" 싶었다. 당연한 거니까, 숨기지 말자. 터부시 하지 말자.

하지만 월경하는 나의 몸을 긍정하는 길은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다음 주기 때에도 나는 안 들어가는 생리컵을 넣어보려 끙끙대며 내 몸을 또다시 저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괜찮다고 생각해야지. 당연한 걸 당당하게!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부정하지 않고, 없는 일처럼 여기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조금씩 조금씩.